기억과 시간을 물질로 응축하는 예술적 기록들
제주를 배경으로 한 밀항의 경로와 생존자들의 삶을 추적하는 전시에서는, 4·3과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개인의 서사가 중심이 된다. '사소한 위로'는 이처럼 폭력과 침묵 뒤에도 이어지는 일상의 얼굴들을 조명하며, 제주에서 부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까지 이어진 바다를 건너야 했던 생존자들의 기억을 담아낸다. 또한 평범한 마을 풍경 속 '세상에 없는 나무'와 같은 작품들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페이지임을 보여준다. 한편, 또 다른 전시에서는 시간을 물리적인 물질로 얼리는 개념예술적 접근이 돋보인다. 사진 이미지를 레진, 아크릴, 에폭시 같은 투명한 매체와 결합하여 하나의 조각적 구조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히로시마 원폭,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사고,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집단 기억을 바꾼 주요 사건들을 다룬다. 작가는 단순히 사건의 장면을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에 남긴 시간적 흔적 자체를 '얼어붙은 이미지'로 제시하며, 보존, 정지, 소멸, 변형이라는 네 가지 상태를 통해 기억이 고정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탐구한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원초적인 감각과 존재의 불안을 물질 위에 새긴 의례적 공간이 펼쳐진다. 벽과 바닥 전체를 가득 채운 반복적인 드로잉은 기원을 알 수 없는 생명체나 신화적 형상들을 보여주며, 이는 하나의 이야기로 닫히지 않는 무한한 상징의 흐름을 만든다. 이와 함께 배치된 세라믹 기물과 부조적 회화는 촘촘한 선과 문양으로 가득 차 있어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의 풍경을 조성한다. 작가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생성과 소멸, 재구성이라는 시간 자체를 드러내며, 관람자에게 해석 이전에 몸의 반응을 요구하는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