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 논란과 군 통수권의 오해
최근 군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군의 본질적 이해와 괴리된 채 진행되고 있다. 압도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지닌 미국의 사관학교 체계를 버리고 일본 방위대 모델로 가야 한다는 억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경쟁력 있는 인재 선발을 위해 서울에 위치한 학교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군의 발전을 위해 육사보다 덜 중요하다고 보는 것인지 의문을 자아낸다. 또한, 군 내부의 지휘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기준으로 중임을 맡겨 군을 혼란스럽게 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국익과 군사적 논리가 아닌 철저히 정치적 셈법으로 졸속 국방정책을 강행하고 있으며, 탈영병 의혹은 해소되지 않아 군 내외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손자는 내부의 분란이 도를 넘을 때를 무섭게 경고한다. 내부의 분란으로 정권이 무너질 수 있으며, 심지어 적의 승리를 유인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손자는 승리의 네 등급을 제시했다. 최상은 적의 의도를 꺾는 것(伐謀), 다음은 적의 편을 끊는 것(伐交), 그 다음은 군대로 싸우는 것(伐兵), 최하는 성을 치는 것(攻城)이다. 위로 갈수록 피 흘리지 않고 이기고, 아래로 갈수록 피 흘리며 겨우 이긴다. 전작권 전환 논의는 이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하지하책(下之下策)'에 해당한다. 70여 년간 유지되어 온 한미연합사 체제는 지구상 최강의 군대를 한반도 방어에 묶어 두는 구조이며,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이라는 연동성은 김정은의 전쟁 계획을 출발선에서부터 무력화시키는 벌모(伐謀)이자, 세계 최강군을 우리 편으로 묶어 적의 벌교(伐交)를 봉쇄하는 장치다. 우리는 이미 상위 두 등급을 손에 쥐고 싸우지 않고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 패를 정치 일정에 맞춰 내려놓으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 벌모·벌교의 억제력을 상징적 지휘권과 맞바꾸는 순간, 우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던 자리에서 스스로 싸워야 하는 자리로 내려서는 것이다. 또한, 전작권은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에 국한된다. 그러나 진정 강한 나라는 그 질문이 전장에서 답해질 일이 없도록 억제를 극대화한다. 전작권 전환의 세 가지 조건(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 동맹의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안보 환경)을 살펴보면, 북핵은 고도화되었고, 역내 환경은 2015년보다 악화되었으며, 확장억제의 결정권은 오직 워싱턴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조건이 후퇴하는데 시점을 앞당기는 것은, 군사적 판단을 임기라는 정치 달력에 맞추는 행위이며, 이는 적군이 아군의 군대를 어지럽게 하여 승리를 거머쥐는 난군인승(亂軍引勝)의 완성이다.
자주(自主)는 지휘봉의 소유가 아니라,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능력에 있다. 국가 통수권의 자리에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이 연속으로 앉으면서, 군을 모르는 손이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군은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고, 그 결을 모르는 손이 쥔 칼자루는 나라를 지키기보다 먼저 나라를 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