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말 위에서 배운 느림의 미학
제주에서의 하루는 속도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으로 채워졌다. 처음 9.81파크에서는 중력이 익숙한 힘처럼 작용했지만,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던 중력이 탑승권을 끊고 기록을 다투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산은 오르라고 있는 줄 알았지만, 그곳에서 경험하는 것은 속도와 제어의 문제였다. 동쪽으로 차를 돌려 동검은이오름에 도착했을 때, 중력은 선물했던 속도를 거두고 한 걸음마다 발목을 잡았다. 검은 흙과 붉은 화산송이가 섞인 길 위로 풀이 자라난 능선은 가까워질수록 가팔랐다. 숨이 차서 풍경을 보는 척하며 오르막길을 걸었다. 동검은이오름은 정상보다 오르는 몸의 리듬을 먼저 기억하게 했다. 완만해 보이는 곳도, 뒤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제주 동부 오름군락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경험을 선사했다. 사진가 최경진 씨는 빨리 걷지 않았다. 그는 풀 사이로 난 길, 능선이 열리는 지점, 구름이 햇빛을 가리는 순간 등 빛이 오는 길을 기다렸다. 관광객에게 오름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겠지만, 사진가에게는 시간의 흐름 그 자체였다. 이름부터 어두운 동검은이오름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시야는 밝아졌고, 다랑쉬, 아끈다랑쉬, 용눈이 등 여러 오름들이 한데 모여 제주 특유의 풍경을 완성했다. 어느 하나가 독차지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장엄함보다는 삶과 밀착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출입 통제 안내판을 만났다. 사람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곳일수록 사람의 발길이 막혀야 회복되는 역설이었다. 사진가는 금지라는 문구를 피해 절경만 담는 대신, 그 아름다움을 위협하는 인간의 흔적 또한 오름의 현재로 기록했다. 올라올 때에는 경사만이 보였지만, 내려갈 때는 길 양쪽의 풀과 작은 꽃, 멀리 있는 오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길이었으나 몸의 방향이 달라지자 풍경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여행 마지막 이동은 사려니 숲에서 외승 체험으로 이어졌다. 말 가까이에 서자 생각보다 크고 생동감 넘치는 존재였다. 말 위에서는 자세부터 어색했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중심을 맞추며 출발하자, 말들은 사람의 지시보다는 앞말의 움직임과 길의 질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9.81파크에서 브레이크를 떼면 지구가 알아서 달려주었지만, 말 위에서는 사람의 뜻보다 말의 기분과 리듬이 중요했다. 삼나무와 편백이 늘어선 숲길을 따라 말을 타고 나아가자, 발굽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경사에 맞춰 상체를 기울이는 동안 풍경을 볼 겨를도 없었다. 평지에 들어서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고, 말의 귀가 먼저 길을 향하고 그다음 시선이 따르는 것을 느꼈다. 앞서 가던 말이 갑자기 멈춰 풀을 뜯으려 하자 모두가 멈춰야 했다. 여행자는 일정에 쫓겼지만, 말은 점심 식사에 충실했다. 그 짧은 실랑이가 주는 여유는 값진 것이었다. 하루 동안 세 번의 이동을 통해 깨달았다. 속도를 결정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며, 아름다움이라는 감탄은 늘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