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실 재해석, 근대 국가의 시도를 묻다
기술을 거쳐 움직이는 도시로 되살아난 공간에서는 커브형 화면을 통해 양관과 전차, 거리 풍경이 이어지며 각국 공사관과 해외 공관을 축으로 대한제국의 외교망이 펼쳐진다. 전시품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근대 도시의 속도와 분위기를 여러 영상 자료가 보충하며 관람객을 맞는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황제의 권위보다는 국가 운영 방식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서양식 예복에 차던 이화문 예검과 1902년 한성 지도, 신식 교육 및 신문·잡지 자료 등을 통해 행정, 교육, 언론, 예술이 동시에 변모하던 시기를 보여준다. 지도 위에는 서울에 들어선 각국 공사관들이 표시되어 있다. 대한제국은 열강의 각축장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세계를 상대로 독립국임을 인정받기 위해 공사관을 열고 외교관을 파견했던 나라였다. 전시의 분위기는 세 번째 공간에서 무거워지는데,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남긴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라는 글귀가 깊은 인상을 준다. 이는 나라를 이끌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경계이자,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이 끝까지 자신을 '대한국인'으로 규정한 기록이다. 한편, 전시 공간에는 고종이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옛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되고 크기가 큰 이 국기는 외교고문 오언 니커슨 데니가 소장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비판하며 조선이 주권독립국임을 주장했던 역사적 맥락과 연결된다. 전시의 끝에는 1912년 제작된 한국병합기념장과 증서, 그리고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 과정을 적은 동제 상량문과 정초석 밑에서 발견된 은판 등 승리한 식민 권력의 물건들이 놓여 있다. 황제의 국새로 시작했던 전시가 총독부의 정초 은판으로 끝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전시는 이러한 결말을 대한제국 전체의 평가로 환원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결과만으로 제도 개혁, 신식 교육, 외교 활동까지 모두 실패로 처리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 공간은 또한 대한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라 넓어진 세계 인식과 새로운 지식, 그리고 외세의 압박과 내부 개혁이 충돌했던 19세기 위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조선3실의 자료들로도 함께 재구성되었다. 새롭게 꾸며진 대한제국실은 '나라가 왜 망했는가'라는 질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무너진 결과에 가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근대 국가의 시도는 무엇이었는지 관람객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