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경제 전환 주역 주룽지 전 총리 별세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이끌었던 주룽지(朱镕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 등은 이날 그가 오전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주룽지는 1928년 후난성 창사 출생자로, 칭화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대표적인 경제 기술관료로 평가받는다. 그는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경제위원회를 거쳐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역임했으며,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오르며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이후 1998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국무원 총리를 지냈다. 신화통신은 주 전 총리가 재직했던 시기가 중국이 계획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던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하이 지역의 '상하이방'과 인연이 있었으나, 덩샤오핑에 의해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으로 발탁된 개혁파 경제관료로 알려져 있다. 주 전 총리는 부총리 재임 시절인 1993년 인민은행장을 겸하며 과열되던 경기를 진정시키고 물가를 안정시켜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1994년에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세원 및 재정을 분리·조정하는 ‘분세제’ 개혁을 추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 재정체제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총리직에 오른 후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금융, 재정, 주택 제도 전반의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부실한 중소 국유기업 정리와 '철밥통'으로 불리던 평생고용 체제 해체는 수천만 명의 도시 노동자에게 사회적 고통을 안겼으나, 그의 강한 추진력 덕분에 ‘경제 차르’라는 별칭도 얻었다. 또한 반부패에 힘썼으며 엄격한 청백리 관리의 상징인 '현대판 포청천'이라는 별명도 뒤따랐다.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공로가 꼽힌다. 대외 개방 확대와 국내 산업 개혁 촉진은 중국이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할 기반을 다졌다. 주 전 총리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했으며, 경제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게 "100개의 관을 준비해라. 99개는 그들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라고 말하며 개혁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일화가 있다. 2003년 퇴임 후 공개 활동은 줄였으나, 이후 출간된 저서들은 큰 인기를 끌며 부패와 관료주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개혁가를 그리워하는 '주룽지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