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기반 위에 자본시장 성장축을 더해야
과거 경제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확산과 2024년 말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며 위기를 겪었다. 당시 상황은 반도체 사이클, 금융, 정치의 위기가 한꺼번에 밀려온 시기였으며, 한국 경제를 설명하는 단어는 성장보다는 쇠퇴에 가까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변곡점은 2025년 중반으로 판단된다.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졌고, 공교롭게도 그 변곡점은 새 정부 출범 시점과 맞물려 AI가 촉발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연간 성장률 자체보다 추세선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저출생, 고령화, 가계부채와 수도권 집중, 반도체 의존과 같은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작동할 수 있다.
경제 성장의 동력 측면에서 생산능력이 제조업의 엔진이라면, 앞으로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아무리 강력한 생산이라는 엔진을 가졌더라도 그 힘을 전달하는 변속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가 최고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이 바꾸려는 것은 바로 이 '변속기'의 기능이다. 이는 제조업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강한 제조업 위에 자본시장이라는 새로운 성장축을 하나 더 얹으려는 시도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기업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이익이 주주가치와 국민 자산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고착화되었다. 가계 자금은 혁신기업보다 부동산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업의 생산능력만 높이고 자본시장의 전달 능력을 개선하지 못하면 산업의 호황이 국민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정부가 추진해 온 상법 개정, 자사주 제도 개편, 그리고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생산적 금융은 이러한 성과를 기업가치와 국민 자산으로 연결하는 핵심 장치들이다.
대만 사례는 가능성과 경고를 동시에 보여준다. 대만은 기축통화나 거대한 내수 시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AI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노드를 확보하며 선진국 평균을 웃도는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산업의 초격차가 곧 국민 전체의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과 기업 이익이 급증해도 그 성과가 소비와 자산, 비(非)정보기술(IT) 산업으로 충분히 퍼지지 않으면 경제는 'K자형'으로 분열될 위험에 처한다.
또한, <0xED><0x8C><0xB9> 증설은 성장투자이자 기술 격차를 지키는 방어투자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오늘날의 공급 부족은 내일의 경쟁자를 키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한 전략은 경쟁자가 성장한 뒤 가격 경쟁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공급 공백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가 제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다. 재정 및 세제 지원도 중요하지만, AI 시대 생산능력 경쟁에서 국가만이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전력망, 용수, 송전망, 국가산단, 교통망과 같은 인프라 병목을 적기에 제거하는 역할이다.